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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싸움


계기란 언제나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 여느때처럼 마을의 아이들이 마을에서 썩 사라지라고 심연에게 돌을 던지며 행패를 부리는 것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시는 부모님 덕에 여러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었지만 그런 천예가 보기에도 심연처럼 눈의 색이 다른 이는 드문 편이기는 했다. 하물며 마을 사람들이 보기에 심연은 얼마나 생소해 보였겠는가. 나와 다르면 꺼리고 배척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동물의 습성인지라 마을에 들어오게 된 심연을 보는 주위의 시선은 그리 곱지 못했다. 좋은 가정에서 사랑만 받고 자란 천예였기에 심연이 이토록 미움받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심연이를 둘러싼 험담들을 듣고 와서 씩씩대는 천예에게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조언해주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하나하나 귀담아듣지 말고 네가 그 아이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게 해주렴. 그 마음이 그 아이에게 더 힘이 될 거야.'

이 이후로 마을에서 심연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이 들려와도 적당히 흘려들을 수 있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심연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야. 심연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속으로는 많이 속상했을거야. 집으로 돌아가면 나한테 너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해줘야지. 속으로 이런 다짐을 하면서.
그렇지만 어느 정도 흘려들을 수 있다는 말이지, 지금처럼 심연이 아이들에게 돌을 맞고 있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천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엄한 표정을 짓고서 심연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요 녀석들, 사람한테 돌을 던지면 어떡해!"


누가 너희들에게 돌을 던지면 좋겠어? 그래도 저들이 잘못한 거란걸 알았는지 아이들은 서로를 슬금슬금 보다가 돌을 던지는 행동을 멈췄다. 천예는 지금 아이들이 하는 행동은 한 사람을 괴롭히는 비겁하고 못된 행동이며 겁쟁이들만 하는 거라고 일러주었다. 그래도 잘못이란 걸 알았는지 숙연해진 아이들을 보며 좋게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라며 아이들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고 보내려는 천예에 무리 중 제일 뒤에 있던 아이가 코웃음치며 말했다.


"그렇지만 쟤는 사람이 아니잖아.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뭐라더라. 불행을 퍼트리고 다니는 역병같은 거라 빨리 쫓아내야한다고 하던데."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말릴 틈도 없었다. 천예가 아이의 멱살을 단단히 잡아 추켜올린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해봐. 지금 뭐라고 했어?"


목소리는 격앙되지 않았고 오히려 차분했지만 천천히, 또박또박 내뱉은 말은 귀에 또렷하게 내리박혔다. 늘 서글서글하게 웃던 천예였던지라 웃음기가 싹 지워진 모습은 낯설었다. 휘어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내려가 있어 무표정으로 생각하기 쉬웠으나 자세히 보면 꽉 다물린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내, 내가 틀린 말 했어? 다들 그랬단 말이야. 저 녀석과 함께 있으면 불행이 옮는다고!"


아이는 말을 더듬기는 했지만 겁 먹은 걸 숨기려는 듯 큰 목소리로 맞섰다. 심연을 향해 손가락질도 했다. 멱살을 틀어진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아이가 기침을 하며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역부족일 뿐. 그제서야 사태의 파악한 아이들이 천예에게 매달려 잘못했다고 그만하라고 울며불며 매달려 보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만해, 천예."


높낮이가 없는 담담한 어조. 그러나 이 한마디 때문에 팽팽하게 조이던 긴장감이 풀려버렸다. 천예는 멍하게 심연, 그리고 저에게 잡혀 공중에 매달린 아이를 보다가 천천히 힘을 풀고 아이를 내려주었다. 아이는 엉엉 울며 무리의 친구들과 함께 부리나케 사라져버렸다.


"가자."


평소의 천예같았으면 알았다고 환하게 웃으며 심연의 어깨에 팔을 둘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반응이 없다. 이럴때 천예는 어떻게 했었지. 심연은 잠깐 생각하는 듯 하더니 천예에게 쭈뼛쭈뼛 손을 내밀었다. 천예는 내민 손을 잡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화 안 나?"


불행을 몰고다니는 역병이라고 너를 모욕했잖아. 심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맞는 말? 그의 말을 되짚어오는 천예의 물음에 심연은 그를 화나게 하는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천예를 달래려면 실언했다고 사과를 해야한다는 것까지는 생각이 닿았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심연은 천예가 그의 어떤 말에 화가 났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화를 풀기 위해서는 사과를 해야하지만 얼버무리듯 사과를 한다면 천예는 더 화를 낼 것이다. 심연은 입을 다물었고 이는 천예의 화를 더 돋우는 결과를 낳았다. 조곤조곤하게 시작했던 천예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네가 역병이야? 그럼 나는? 나는 뭔데? 불행이 옮는 지도 모르고 역병이랑 실실 웃으며 다니는 천치바보? 아니면 다들 피하니까 불쌍해서 놀아주는 자선사업가야?"


맞네.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는 심연을 보며 확신이 섰다. 얼음을 뒤집어 쓴 것처럼 머리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날 그렇게 생각했던 거네. 나는 너랑 꽤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전부 혼자만의 착각이었구나. 천예는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심연과의 싸움이 지겨웠다. 일방적으로 몰아세우고 화내는 자신과 잘못한 것 하나 없이 피해만 입었는데 사과해야 하고 저의 눈치만 보는 그. 이제 더 이상 이런 생산성 없는 논쟁을 이어나고 싶지 않았다.


"갈 거야. 따라오지 마."


심연의 시선을 무시하고 천예는 등을 돌렸다. 너무 매몰차게 쏘아붙여서일까, 천예보다 한템포 느리게 뒤에서 따라붙던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제 잡지도 않는다는 거지. 이러면 더 괘씸해서 쳐다보기도 싫어지는 게 사람 마음일텐데 이상하게 심연만큼은 미워지지 않는다. 아까 저를 애타게 바라보던 심연의 얼굴이 자꾸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바보."


아빠도 내가 심연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려주라고 하셨잖아. 조금만 더 상냥하게 말해줬다면 좋았을걸. 천예는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애꿎은 돌멩이만 발로 차며 화풀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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