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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얀데레 합작] 네임리스 태이 드림

드디어, 네가 내 것이 되었구나. 메마르게 갈라진 목소리는 희열로 떨리고 있었다. 자신의 목을 죄여오는 압박감에 벗어나려고 안간 힘을 썼지만 오히려 주박이 되어 더 깊게 속박당할 뿐이었다. 괴기스럽게 빛나는 녹색의 눈동자에는 오로지 별하의 얼굴만이 담겨있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주문처럼 반복되는 목소리 위로 별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겹쳐졌다. 캄캄하게 침전된 시야에 천천히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별하!”

 

 

자신의 이름을 강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몸이 튀어 올랐다. 눈을 뜨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태이의 얼굴이 보였다. 꿈에서의 광기로 번뜩이는 눈동자가 생각나 작게 몸을 떨자, 나쁜 꿈이라도 꾼 거냐며 다정하게 걱정해주는 목소리가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밥 먹어야지. 손잡아 줄 테니까 얼른 일어나. 내밀어진 커다란 손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겹쳤다. 잡은 손은 꿈속의 모습과 달리 단단하기도 하고 따뜻해서 뭔가 의지가 되는 느낌이었다.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 때문에 태이의 얼굴이 빛나지만 어딘가 얼굴이 흐릿하게도 보였다.

 

 

아침은 많이 먹지 않는 별하를 위해 간단한 토스트랑, 여러 가지 야채가 큼직하게 들어있는 따끈한 스프, 그리고 직접 만든 과일드레싱을 뿌린 산뜻한 샐러드. 간단한 식단이더라도 메뉴선택이라거나 드레싱 등 사소한 것에서부터 별하의 취향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꼼꼼히 묻어나온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이 일상이 무척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예전에는 더 화려한 식사가 나왔지만 분위기가 삭막해서 말 한 마디 오가기도 힘든 분위기였는데, 소소한 추억들을 떠올리다 별하는 문득 이 따뜻한 일상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았으나 이상하게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꼭 누군가가 그 부분만 화이트로 칠해놓은 것처럼. 별하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토스트를 한입 베어 물면서 태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랑 나랑 언제부터 같이 살았던 거니?”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태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별하가 알던 태이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별하는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더 캐묻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자신의 연인과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있었고 마음 한 구석에서 이 평온을 깨지 말아달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신경을 잠시 꺼두자고 생각했던 별하의 머릿속으로 '언제부터 네가 내 연인이었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태이의 부드러운 미소를 보며 그 의문은 잠시 속으로 삼켜두기로 했다.

 

 

아침식사는 흠잡을 곳이 없는 식사였다. 태이의 요리솜씨는 늘 그랬듯 훌륭했고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피아노 연주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식사를 마치고 태이는 별하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고는 소파에 앉혔다. 나머지 뒷정리는 내가 할 테니까 너는 거기 앉아서 편하게 쉬고 있어. 도와줄지 물어보는 별하의 말을 태이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잘랐다. 안 돼.

 

"우리 공주님은 일 같은 건 안 해도 괜찮아. 내가 다 할게.”

 

그래, 너는 아무 것도 할 필요 없어. 소중하고, 소중하게 아껴줄 거니까.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태이에게 별하가 무슨 말을 했냐는 듯 눈썹을 들어 올렸지만 태이는 예의 그 웃음만 보일 뿐이다. 혼잣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 별하의 가지런하게 정돈된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고 동그란 이마 위에 짧게 입을 맞춘 뒤 자리를 떴다. 그릇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깐 눈을 붙이려다 퍼뜩 의문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오늘이 며칠이지?

 

한 번 의문이 떠오르기 시작하니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오늘 학교에 가는 날이던가. 아니야. 그랬다면 태이가 학교 가야한다며 깨워주러 왔겠지. 잠깐만, 태이가 깨워준다고? 별하는 어딘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침에 피곤해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이 깨워주러 온 적은 없었다. 만약 깨워주러 왔다고 해도 그 전에 이미 일어나서 준비를 하는데 오늘은 왜……

 

 

날짜를 알기 위해 달력을 찾으러 돌아다녔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이곳에서는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없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TV, 컴퓨터, 그 외 전자기기, 심지어 시계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 있어?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태이가 걸어 나오자 별하는 다급한 표정을 하고서 태이의 팔을 붙잡았다.

 

 

오늘 며칠이야?”

 

 

잠시 멀뚱하니 별하를 얼굴을 보다 이내 너털웃음을 터트리고서는 다시 별하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거야. 이렇게 귀여운 얼굴을 하고서는. 장난스럽게 넘어가려고 해보았으나 진지한 얼굴이 되어버린 별하를 보고 안 통하네, 라고 중얼거리며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잖아.”

 

 

여기는 너와 나, 둘만의 세계인데 바깥세상이 어떻든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귓가에서 나긋하게 울리는 태이의 말에서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집은? 학교는?

 

그런 게 왜 필요해? 나는 너만 있으면 아무 것도 상관없어. 별하는 이이상 태이와 대화를 하면 시간낭비라는 것을 느꼈다. 돌아가야겠어. 단정적인 어조로 이야기하자 태이의 곧은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냥 여기에서 나와 함께 있으면 안 되는 거야?”

 

 

집도, 학교도,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 돌아가봤자 또 네 목을 조이는 생활이 반복될 뿐이겠지. 나는 그런 걸 보고 싶지 않아. 너를 편하게 해주고 싶단 말이야. 차분하게 설득하려는 태이를 별하는 말없이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돌아가야겠어.”

훨씬 고통스러운 상황이 널 기다리고 있어도?”

 

 

환상에 기대어 숨어사는 것보다는 잔혹한 현실이라도 받아들이고 싶어. 내가 가야할 길이라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어? 착잡해진 얼굴로 태이는 별하를 바라보았다.

 

 

나가는 곳은 저 쪽에 있어.”

 

 

손가락으로 벽을 가리키자 아무 것도 없었던 벽에 문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별하는 미소로 고맙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분명 후회할 거야.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태이가 말했다. 대답 대신 한 번 웃음만 흘려주고는 손잡이를 잡고서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활짝 열린 문으로 이때까지 보지 못했던 어둠이 별하의 몸을 집어삼켰다. 몸이 어둠에 침식되어가는 중에서도 태이의 목소리는 머릿속에서 뚜렷하게 울렸다.

 

 

내가 말했잖아. 후회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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